가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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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아들 위한 네버랜드 꿈꾸던 ‘피터 팬 아빠’ 별세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겠다던 전경철씨가 지난 5일 밤 7시50분께 별세했다. 향년 64세.

 

전씨는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20년 넘게 홀로 돌봐온 아버지다. 지난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에도 그는 자신의 치료보다 아들의 미래를 더 걱정했다. 자신이 떠난 뒤 아들이 어디서, 누구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

 

전씨의 아들 제원씨는 27살의 1급 중증 자폐성 장애인이다. 지적 능력은 두 살 수준에 머물러 있고, 말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아들을 ‘피터 팬’이라고 불렀다. 나이는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돌봄이 필요한 아들의 모습에서, 어른이 되지 않는 동화 속 인물을 떠올린 것이다.

 

아들을 맡길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씨는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장애인 장기거주시설을 찾아다녔지만, 제원씨를 받아주겠다는 곳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중증 성인 발달장애인을 장기간 돌볼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현실이 전씨 앞에 놓여 있었다.

 

부자의 사연은 지난 3월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제원씨는 충북의 한 발달장애인 자립시설에 입소했다. 그러나 전씨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 한 명이 갈 곳을 찾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전씨는 아들과 같은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공간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가 구상한 공간의 이름은 ‘피터 팬 네버랜드’였다. 돌봄 공백 속에 놓인 발달장애인들이 외롭게 밀려나지 않고, 보호와 일상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이 계획은 시민들의 참여로 조금씩 현실에 가까워졌다. 전씨가 추진위원장을 맡은 ‘피터팬 자폐인복지재단 설립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후원이 이어졌다.

 

전씨는 생전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후원 상황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시민 1749명이 3억2460만원을 보탰다. 여기에 아들과의 이야기를 담은 책 ‘안녕, 피터 팬’의 인세와 개인 후원금 1억2300만원이 더해졌다. 모두 4억4760만원이 모였다.

 

목표액은 5억원이었다. 모금이 시작된 지 53일 만에 목표의 90% 가까이가 채워졌다. 일부 기업도 사업 참여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아버지의 절박한 바람이 사회적 약속으로 확장되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전씨는 네버랜드가 실제 문을 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의 지인은 “아들이 시설에 들어간 뒤에도 고인은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며 “몸은 많이 쇠약해졌지만 재단을 세우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씨는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에 안치됐다. 생전 뜻에 따라 빈소는 마련하지 않았고 조문도 받지 않는다. 그는 지난달 14일 ‘생전 장례식’을 열어 시민과 후원자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제원씨가 있다. 발인은 7일 낮 12시이며, 장지는 충남 공주 선영이다.

 

전씨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사회에 남아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성인 중증 발달장애인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피터 팬 네버랜드’는 한 가족의 사연을 넘어,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겨온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꽃무릇 절정…지금 함양 상림 가야 하는 이유

함양읍에 있는 상림공원을 찾았다. 상림에 들어서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꽃무릇이 숲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숲길 곳곳에 꽃무릇이 무리지어 피어나면서 마치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함양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군 태수를 지낸 고운 최치원이 마을과 농경지를 홍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강 물길이 함양읍 중앙을 지나면서 홍수 피해가 잦았다. 이에 물길을 돌리고 둑을 쌓은 뒤 둑 주변에 나무를 심어 숲을 가꿨다고 한다.시간이 흐르면서 큰 홍수로 숲 가운데 일부가 유실됐고, 그 결과 숲은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게 됐다. 하림은 상당 부분 훼손됐지만 상림은 옛 숲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현재 상림의 면적은 약 21ha에 이르며, 120여 종의 다양한 수목 2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상림의 가을 풍경을 대표하는 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꽃무릇이다. 석산이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9~10월 붉은 꽃을 피운다. 독특한 점은 꽃이 진 뒤에야 잎이 돋는다는 것이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생태적 특징 때문에 꽃무릇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이 붙었다.흔히 꽃무릇을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꽃이다. 상사화 역시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않는 특징이 있지만 7~8월 분홍색이나 노란색 꽃을 피우는 식물로, 9~10월 붉게 피는 꽃무릇과는 구분된다.꽃무릇이 가득한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 붉은 꽃대 위로 꽃만 피어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잎 하나 없이 외롭게 피어난 꽃들이 숲길을 따라 이어지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했다.상림공원 한쪽에서는 팜파스 그라스와 베고니아도 만날 수 있었다. 붉은 꽃무릇 사이로 펼쳐진 다양한 식물들이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들었다. 넓은 꽃밭을 천천히 거닐며 가을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공원 안에는 두 나무의 뿌리가 서로 합쳐져 하나가 된 연리목도 자리하고 있다. 연리목은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합쳐진 나무를 일컫는데, 예로부터 부부의 깊은 금실이나 남녀 사이의 애정을 비유하는 의미로도 알려져 있다.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운 최치원의 신도비도 만날 수 있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숲과 붉게 피어난 꽃무릇이 어우러진 상림은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여름의 더위가 아직 남아 있는 듯한 날씨였지만, 붉게 물든 상림의 숲은 분명 가을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