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월드

前국가대표의 충격 근황 “접대부로 일했다”

일본 체조 국가대표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던 쓰루미 니지코가 은퇴 후 생활고를 겪으며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사실을 털어놨다. 한때 ‘천재 체조 소녀’로 불리던 스타 선수의 고백은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일본 매체 찬토는 최근 쓰루미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쓰루미는 이 인터뷰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일본선수권대회 개인종합 6연패를 달성했고,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2 런던 올림픽에도 출전한 일본 체조계의 대표 선수였다.

 


쓰루미의 선수 인생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급격히 흔들렸다. 결국 그는 은퇴를 선택해야 했다. 문제는 은퇴 이후였다. 어린 시절부터 체조에만 몰두해 온 탓에 새로운 직업을 준비할 시간도, 사회생활을 배울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다. 화려한 경력과 달리 현실은 차가웠다.

 

은퇴 후 그는 한 벤처기업에 들어가 체조 지도자로 일했다. 올림픽 출전 경력을 살려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지만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급여가 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낮았기 때문이다. 쓰루미는 결국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그는 “수입이 너무 적어 차라리 체조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평생 해온 체조를 부정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며 “그래서 체조를 해서 다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쓰루미가 유흥업소 근무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한 생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창업을 꿈꾸면서 성공한 경영자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성공한 사람들과 가장 효율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쓰루미는 도쿄 롯폰기 일대의 10곳이 넘는 업소에서 면접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27세였고 단골손님도 없는 전직 운동선수였다”며 “밤의 세계도 냉정했다”고 말했다. 이후 1년 동안 손님을 한 명씩 늘려가며 경험을 쌓았고, 나중에는 롯폰기와 긴자의 업소로 옮길 수 있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두려움도 컸다. 그는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기사화되면 어쩌나,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창업을 위해서는 경영자들의 사고방식과 현장 감각을 배워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쓰루미는 유흥업소 일을 그만두고 체조 교육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또 아이돌 육성 사업에도 참여하며 체조와 대중문화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체조를 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문화로 만들고 싶었다”며 “동시에 체조계의 낮은 보수 구조도 바꾸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쓰루미는 자신의 경험이 개인의 특이한 사연으로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올림픽에 나간 선수조차 은퇴 후 생활고를 겪는 현실을 보며 다음 세대에게 미래가 없다고 느꼈다”며 “나와 같은 고통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고백은 일본 체육계가 선수들의 은퇴 이후 삶을 얼마나 제대로 지원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메달과 기록 뒤에 가려진 선수들의 생계 문제, 진로 교육, 처우 개선이 다시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로마 채석장서 빚은 샴페인 세계지도

58년 남편을 잃고 홀로 사업을 맡게 된 마담 뽀므리의 과감한 결단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당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고대 로마 시대의 폐채석장들을 사들여 이를 하나의 거대한 갱도로 연결하는 대역사를 단행했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이 공사는 오늘날 총연장 18km에 달하는 거대한 지하 도시를 탄생시키며 샴페인 역사에 획을 그었다.이 지하 도시의 독특한 점은 갱도마다 세계 주요 도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런던,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마담 뽀므리가 자신의 샴페인을 수출하며 정복해 나갔던 도시들의 명칭은 어두운 갱도 안에서 빛나는 훈장과도 같다. 방문객들은 백여 개의 계단을 내려가 습도 98%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19세기 여장부가 그려 넣은 세계지도를 따라 걷게 된다. 이는 단순한 저장고를 넘어, 한 기업가가 품었던 글로벌 비즈니스의 원대한 포부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공간이다.갱도의 백악 벽면은 그 자체로 거대한 캔버스 역할을 한다. 1882년 조각가 귀스타브 나블레가 무른 석회암 벽을 직접 파내어 완성한 대형 부조들은 샴페인을 즐기는 당대의 연회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손톱으로 긁으면 부스러질 만큼 부드러운 백악의 특성을 활용해 액자 틀의 장식과 커튼의 주름까지 정교하게 묘사한 이 작품들은 140년이 지난 지금도 갱도의 음습한 공기 속에서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과거의 예술가들이 남긴 이 흔적들은 샴페인이 지닌 문화적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뽀므리의 까브가 특별한 이유는 고전 유산에 머물지 않고 현대미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에 있다. 2002년부터 매년 진행해온 '익스피리언스 뽀므리' 프로젝트는 수천만 병의 술이 익어가는 창고를 첨단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19세기의 고전 부조 아래 설치된 현대적인 미술 패널과 조형물들은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영감을 제공한다. 술 향기가 진동하는 지하 갱도에서 마주하는 현대미술은 관람객들에게 시공간을 잊게 하는 기묘한 미적 체험을 선사한다.지하의 서늘함이 예술과 술을 보듬는 동안, 지상에서는 정반대의 자연 현상이 포도를 키워낸다. 까브 바로 위쪽에 위치한 25헥타르 규모의 포도밭 '클로 퐁파두르'는 40도가 넘는 여름철 폭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과실을 익힌다. 연중 10도를 유지하는 지하의 정적인 시간과 지상의 역동적인 계절감이 교차하며 뽀므리만의 독보적인 풍미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환경은 샹파뉴 지역이 왜 세계 최고의 와인 성지로 불리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마담 뽀므리의 성공 뒤에는 뵈브 클리코라는 또 다른 위대한 여성 선배의 발자취가 있었다. 1805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하우스를 물려받은 마담 클리코는 샴페인의 투명도를 높이는 혁신적인 공정을 발명하며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뵈브 클리코가 현대적인 세련미와 매끄러운 투어 동선으로 명성을 떨친다면, 뽀므리는 거친 백악 벽면의 질감과 현대 예술의 파격적인 결합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두 미망인이 일궈낸 지하의 제국은 지상의 폭염 속에서도 변치 않는 서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