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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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 한계 넘은 열연, '나는 나의 아내다'가 증명

 단 한 명의 배우가 무대 전체를 책임지는 1인극은 연기자에게는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며, 관객에게는 상상력의 극치를 요구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이러한 1인극의 묘미를 극대화하며 관객들을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초대한다. 독일의 실존 인물 샤로테 폰 말스도르프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이 작품은 나치즘과 사회주의라는 극단적인 체제 아래서 여장남자로 살아남아야 했던 한 인간의 처절하면서도 당당한 생존 기록을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작품은 샤로테의 생애를 추적하는 작가 더그의 시점과 샤로테의 회고를 교차시키며 서사를 쌓아 올린다. 무대 위 배우는 주연인 샤로테를 비롯해 그녀의 주변을 스쳐 간 무려 35명의 인물을 홀로 연기해야 한다. 극 초반에는 인물이 시시각각 변하는 1인극 특유의 전개 방식이 관객에게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으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배우의 세밀한 호흡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무대 위의 빈 공간을 시대의 공기로 가득 채운다. 관객은 어느덧 배우의 몸짓 하나에 수많은 인물의 실루엣을 겹쳐 보게 된다.

 


이번 공연의 백미는 지현준과 백석광이라는 두 걸출한 배우가 보여주는 서로 다른 연기 질감이다. 지현준은 역사의 비극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낸 샤로테의 내면을 단단하고 능동적인 에너지로 구축한다. 그의 연기는 인물의 모순적인 생존 전략마저 인간적인 고뇌로 승화시키며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는다. 반면 백석광은 탁월한 발성과 딕션을 활용해 청각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남성 캐릭터들을 연기할 때 보여주는 묵직한 전달력은 관객이 복잡한 서사의 실타래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된다.

 

하지만 120분간 인터미션 없이 이어지는 공연은 관객에게 상당한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1인극의 특성상 배우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동선이 극의 핵심적인 정보를 전달하는데, 공연장의 낮은 단차로 인해 일부 시야가 가려지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무대 하단이나 구석에서 이루어지는 세밀한 연기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앞좌석 선택이 필수적이다. 또한 장시간 관람하기에 다소 불편한 좌석 환경은 작품이 주는 깊은 감동과는 별개로 관객이 감수해야 할 물리적인 제약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신분류학'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그 어떤 카테고리로도 규정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존엄성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샤로테가 수집한 낡은 가구들이 시대의 풍파를 견뎌냈듯, 그녀의 삶 역시 혐오와 차별의 역사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아 현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배우의 숨결 하나에 35명의 인생이 녹아드는 이 경이로운 마법은 1인극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예술적 성취를 증명해 낸다.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단순한 인물 일대기를 넘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치열한 시도다. 좁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광대한 서사는 관객 각자의 마음속에 저마다의 샤로테를 새기며 막을 내린다. 어떤 분류로도 가둘 수 없는 한 인간의 위대한 생존기는 오는 12일까지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계속된다. 배우의 열연과 관객의 상상력이 만나는 이 뜨거운 현장은 올여름 대학로를 찾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예술적 잔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울진 은어다리 야간 개장, 오늘부터 '황금빛 노을'

가장 긴 거리를 자랑하지만, 그만큼 보상과 같은 절경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친필 현판을 내릴 정도로 극찬했던 망양정은 이 코스의 핵심이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동해는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수백 년 전의 푸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인근 망양정 휴게소에서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해안 파노라마는 도보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휴식을 선사한다. 특히 코스의 종착지인 수산교 부근은 민물인 왕피천과 짠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 특유의 수려한 경관을 뽐내며 자연의 신비를 드러낸다.이어지는 26코스는 수산교를 출발해 죽변항으로 향하는 13km의 여정으로, 울진의 현대적 감각과 전통적 맛이 공존하는 길이다. 남대천 하구에 자리 잡은 '울진은어다리'는 이 코스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다. 회귀하는 은어를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이 다리 양 끝을 지키고 있는 이곳은 노을이 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드는 풍경이 일품이다. 은어다리를 지나 만나는 연호공원은 호수를 감싸는 울창한 숲과 데크 산책로가 어우러져 잠시 숨을 고르기에 제격이다. 평온한 공원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대게의 고장이자 곰치국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죽변항이 여행객의 허기를 달래줄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다.울진 해파랑길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27코스는 죽변항에서 고포마을까지 이어지는 11km의 짧지만 강렬한 구간이다. 죽변항 뒤편 언덕에 서 있는 죽변등대는 1910년부터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동해의 길잡이 역할을 해온 역사의 증인이다. 등대 아래로는 해안 절벽을 따라 키 작은 대나무인 시릿대가 터널을 이루는 '용의 꿈길' 산책로가 펼쳐진다. 대나무 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서늘한 소리와 깎아지른 절벽 아래서 들려오는 거친 파도 소리가 어우러지는 이 길은 해파랑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서정적인 구간으로 평가받는다.'용의 꿈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붉은 지붕이 인상적인 드라마 '폭풍속으로' 촬영 세트장이 나타난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이 집은 이제 울진을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필수 포토존이 되었다. 세트장에서 내려다보는 하트 모양의 해변은 연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코스의 종점이자 울진의 끝자락인 고포마을은 예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던 돌미역의 산지로 유명하다. 마을 전체에 은은하게 퍼지는 바다 내음은 길고 길었던 울진 구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도보 여행자들에게 건네는 자연의 마지막 선물과도 같다.울진의 해파랑길 후반부는 이처럼 역사적 유적과 현대적 감성, 그리고 자연의 원시성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 25코스의 망양정이 주는 고전적인 감동에서 시작해, 26코스 은어다리의 세련된 야경을 거쳐, 27코스 용의 꿈길의 고즈넉한 정취에 이르기까지 여행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죽변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풍부한 먹거리 문화는 단순히 걷는 즐거움을 넘어 여행의 질을 한 단계 높여주는 요소다. 곰치국의 시원한 국물 한 모금은 70km에 달하는 울진 구간을 완주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다.오늘부터 시작된 은어다리의 새로운 야간 조명 연출과 죽변 해안의 연장 운영은 울진 해파랑길을 여름밤의 낭만 가득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낮에는 푸른 바다와 대나무 숲의 청량함을 즐기고, 밤에는 화려한 불빛이 흐르는 은어다리 위에서 동해의 바람을 맞는 일은 올여름 울진이 제안하는 가장 완벽한 휴가 방식이다. 고포마을의 돌미역 향기를 끝으로 울진 구간을 벗어나는 여행자들의 등 뒤로, 100년 넘은 죽변등대의 불빛이 여전히 묵묵하게 길을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