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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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 의대 중 10곳 '단 한 명도 수강신청 안 해'...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 개혁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실질적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가분 2000명을 비수도권 지역 의대를 중심으로 대폭 배정해 지역 필수 의료를 강화할 것"이라던 대통령의 공약(公約)은 불과 1년 만에 공약(空約)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당초 2000명 증원을 목표로 했으나 1497명으로 축소된 증원 인원마저 대부분 수업을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25학년도 1학기 의과대학 수강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월 25일 기준 전국 40개 의대의 수강신청 인원은 총 4219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40개 의대 중 10곳에서는 단 한 명의 학생도 수강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해 일부 대학은 개강을 연기하는 조치를 취했다. 가톨릭대 의대의 경우 예과 1학년과 본과 모두의 개강을 4월 28일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2025년 의대 신입생 중 3분의 1은 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으로 입학한 학생들이다. 본래 의대 입학 정원은 3058명이었으나, 윤 대통령은 의료 개혁의 일환으로 '의대 증원 2000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지난해 2월 20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이 숫자(2000명)도 턱없이 부족하다"며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의료계와 교육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전년 대비 1497명 증원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신입생들이 대거 수업을 거부하게 된 배경에는 선배들의 강력한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 관련 커뮤니티에는 "저희 애는 선배들이 설득하니까 분위기상 (동조했다는데)", "수업 거부 투표도 했다는데요. 올해만큼은 유급 시킬까 봐 마음이 무거워요", "의대 신입생의 휴학을 강요하는 건 불법 아닌가요" 등 학생과 학부모의 복잡한 심경을 담은 글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의대의 폐쇄적인 문화적 특성상 선배들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모든 활동이 선배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이뤄진다. 특정 의국에 들어가게 되면 평생 같이 볼 수도 있다"며 "독립적으로 수업을 듣고 실습에 나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시험 기출문제인 '족보'를 받기 위해서라도 선배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의대 특유의 문화적 환경이 신입생들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제한하고 있다는 하소연도 이어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신껏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향해 낙인을 찍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의대생 익명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서는 집단행동에서 이탈한 연세대 의대생 약 50명의 실명 등이 담긴 명단이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복학한 의대생을 향한 조롱과 비난이 만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온·오프라인으로 가해지는 이러한 심리적 압박감이 신입생들로 하여금 수업을 거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의대 선배들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집단 휴학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진선미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학기 40개 의대의 출석률은 고작 2.8%에 그쳤다. 이는 재적생 100명 중 단 3명만이 학교에 출석했다는 의미다. 더욱이 학생이 10명 미만으로 출석한 학교는 22개교로 전체의 절반이 넘었고, 단 1명도 출석하지 않은 곳도 7개교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해 교육부는 수업을 거부하는 신입생들을 향해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김홍순 교육부 의대교육지원관(국장)은 "의대 2025학번은 증원을 알고 입학했기 때문에 증원을 이유로 한 수업 거부 명분이 없다"면서 "수업을 거부하는 25학번에게는 대학이 반드시 학칙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경고했다. 또한 "올해는 집단 휴학을 일괄 승인하는 등의 학사 유연화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며 "대학들이 휴학생 처분을 학칙대로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교육부의 경고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의대생들의 반발에 못 이겨 지난해처럼 집단 휴학을 사실상 인정해 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당장 의대생과 전공의 복귀를 꾀하려면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전부 철회하고 의료계 요구를 받아줄 수밖에 없다"면서 "교육부 권고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1년 동안 보여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한 "의사로서 점진적으로 의대 정원을 증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의사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 자료가 필요하다"며 "수급취계위원회 등 독립성과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기구를 통해 증원분이 재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은 탄핵 소추로 인한 정부 통제력 약화와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 그리고 신입생들마저 가세한 집단행동으로 인해 실질적인 좌초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의대생들의 복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증원 정책에 대한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계 간의 간극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안동 만휴정 야간 개장, 달빛 아래 '미스터 션샤인' 다리 걷자

지은 이 작은 정자는 최근 야간 개장을 앞두고 은은한 조명을 입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해 봄, 거대한 화마가 주변을 집어삼키는 위기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만휴정은 이제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생명력과 회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낮 동안 사진을 찍으려는 인파로 붐비던 외나무다리는 달빛 아래에서 비로소 본연의 호젓함을 되찾는다.만휴정이라는 이름에는 '늦게 얻은 휴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름처럼 이곳은 인적 드문 깊은 산속에 자리해 수려한 자연경관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하얀 너럭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곡물과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송암폭포, 그리고 정자를 감싸 안은 푸른 솔숲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특정 포토존의 명성을 넘어, 정자 뜰에 피어난 불두화와 고요한 밤의 공기가 어우러지는 순간이야말로 만휴정의 진정한 매력이 드러나는 때다.만휴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보백당 김계행 선생과 응계 옥고 선생을 기리는 묵계서원이 자리한다. 담장 너머로만 엿봐야 하는 다른 고택들과 달리, 이곳은 누구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열린 서원'으로 운영되어 방문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진덕문과 읍청루를 지나 강당인 입교당 대청마루에 앉으면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의 각도와 계절의 색채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젖은 흙냄새와 함께 서원의 운치가 한층 짙어져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묵계서원의 사계절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방문객을 유혹한다. 봄에는 진분홍빛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나고, 여름이면 붉은 배롱나무꽃이 뜰을 수놓는다. 가을에는 은행나무 잎이 황금빛 카펫을 깔아주며, 겨울에는 흰 눈이 내려앉아 세상의 소음을 지워버린다. 서원 왼쪽의 주사는 현재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데, 'ㅁ'자형 건물 구조 덕분에 대청마루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지붕 위를 오가는 작은 새들의 움직임조차 이곳에서는 하나의 풍경이 된다.서원 인근의 보백당 종택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묵계서원과 종택에서는 고택 숙박 체험이 가능해 안동의 밤을 더욱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다. 숙박하지 않더라도 앞뜰을 거닐다 보면 마을 어르신들이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간식을 나눠 드시는 정겨운 풍경을 마주하기도 한다. 여름의 배롱나무와 가을의 거대한 은행나무는 종택의 오랜 역사를 묵묵히 증명하며 방문객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만휴정에서 시작해 묵계서원과 보백당 종택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번잡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대청마루에 가만히 앉아 풍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이곳은 안동이 간직한 고즈넉한 아름다움의 정수다. 화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만휴정의 밤은, 5월 중순 정식 개장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달빛 아래의 휴식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